|
두레굿
두레굿은 직접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노동과정 속에서 노동과 놀이를 결합시켜 행하는 풍물의 형태를 말한다.
전에는 마을단위의 공동노동조직인 두레가 이를 담당하였는데 이 두레굿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두레의 출역이 있는 날에는 새벽에
농청이나 마을의 넓은 뜰에서 나발을 불거나 북을 쳐 두레꾼들을 모으고 두레꾼들이 다모이면 인원을 확인하고 길굿을 치며 그날 작업할 논으로 간다.
논에 이르면 이 두레를 상징하는 두레기(농기:농자천하지대본 또는 신농유업이라고 씀)를 꽂아 놓고 작업을 시작한다. 이때, 일꾼들 중에 몇 사람은
작업을 하지 않고 풍물을 쳐서 일을 독려하고 흥을 내는데 이를 "풍장"또는 "두레풍장굿"이라고 한다. 이처럼 두레굿은 모일 때부터 이동할
때, 일하는 과정 내내, 참을 먹을 때, 일이 끝나고 헤어지기 전까지 하던 것이며 가락과 세련되지 않은 춤, 그리고 농요가 주내용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두레굿 중에서 그 해의 힘든 일이 끝나는 마지막 김매기 날에 호미씻이라고 하여 커다란 풍물판이 벌어지는데 그 해
가장 농사일을 열심히 한 사람을 뽑아 소에 태우고 마을을 돌면서 걸판지게 노는데 이때에는 여러가지 전형적인 인물을 상징하는
잡색(대포수,조리중,각시 할미등)들도 나와 흥을 돋군다. 호미씻이는 대개 음력으로 7월 15일인 백중날 열리기 때문에 백중 놀이라고도 하고
장원두레꾼을 뽑는다 하여 장원질이라고도 한다. 이와같이 두레꾼들이 주체가 되어 만드는 풍물판중 두레풍장굿, 호미씻이는 노동과 놀이가 결합된
이상적인 풍물판으로 도시생활 중심의 오늘날 우리생활 속에서 현실에 맞게 변형되어 다시 부활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풍물판이다.

마을굿
마을굿은 두레굿이 마을 전체로 확대된 것이며 노동 과정 외부에서 노동과 관련을 가지며 이루어지는
풍물이다. 마을굿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풍물의 형태로 당굿, 당산제(동제)가 중심이다. 당산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곳으로 대개 입구나
중심적인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 귀퉁이에 있다. 일반적으로 음력 정초에 지내는 당산굿은 우선 마을회의를 통하여 날짜를 정하고 제주를 뽑은
다음 제수를 장만한다. 제를 지내는 날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넓은 장소에 모여 길굿을 치며 당산에 가서 제를 지내고 제를 다 지낸 다음 당산
앞마당에서 판굿(공연)을 한바탕 벌이고 마을로 들러 온다. 이때부터 마을의 각 장소를 돌면서 제를 지내는데 이를 지신밟기라 한다.
지신밟기는 농청이나 마을 회관, 공동우물, 마을입구(문굿)등 공동체 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을 먼저 하고 각 집을 돌면서 지신밟기를
계속한다. 이 지신밟기는 당산굿과 독립된 마을굿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지신밟기는 수일 동안 계속되는데 앞치배 뒷치배 모두 참가하며,
당산굿-샘굿-집돌이-판굿으로 구성된다. 지신밟기가 발전한 고장에서는 집돌이가 끝나는 날부터 몇일을 두고 판굿과 파제를 벌이는데 이때의 판굿은
풍물패가 마을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수행하는 공연인 것이다. 지신밟기가 끝나는 정월 대보름에는 줄다리기, 고싸움, 차전놀이, 쇠머리대기, 탈놀음
등의 대동놀이를 벌이기도 하였다.
마을굿은 당산굿과 지신밟기 외에도 세시풍속과 결합되어 커다란 풍물판이기도 하다.

걸립굿
걸립굿은 마을굿 속의 지신밟기가 공동기금의 모금을 목적으로 발전한 형태를 말한다. 마을굿에서
발전해 온 공연으로서의 판굿이 걸립의 목적에 맞게 예술적 측면이 더욱 발전하게 되고, 마을이 천재지변을 당했을 때는 마을에서 기능이 뛰어난
소수의 인원으로 피해를 입지않은 먼 곳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나 판굿을 벌여서 기금을 건립하여 돌아오기도 하였다. 또는 마을 단위의 큰
공사나 걸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소수의 정예화된 사람들로 구성하여 각지를 돌기도 하였다. 이런 걸립굿의 발전은 마을마다 다르게 발전해 온
풍물을 많이 교류하게 만들었으며 비나리나 고사소리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특히 마을굿보다 판굿이 더욱 다양해지고 세련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연희굿
연희굿은 걸립굿에서 보다 발전한 형태이며 조선후기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 전문 연희패가 생기면서
장시를 기반으로 하여 독자적인 공연 형태로 발전한 것을 말한다. 이런 전문연희패의 발생은 두레굿이나 마을굿 속에 담겨있는 소박한 예술성을 고도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문 예인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여러가지 풍물의 형태를 창출한 것이다. 이러한 연희굿의 발전은 예술적인
발전을 이룩한 것과 마을굿을 보다 풍성하게 살찌우는 역할을 수행하여 마을굿과 연희굿이 같이 발전하는 즉 풍물의 전성기를 이룰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연희굿은 당시 민중들의 생활과 동떨어진 예술로 발전하는 단점도 갖고 있었다.

|